프롤로그
이 작은 책자는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소위 대화로의 초청 안에 숨겨져 있는 기독교에 대한 위협을 덮고 있는 베일을 벗겨내는 첫 번째 작업이다.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은 2008년 지난 몇 달간 전 세계적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반응은 초청에 대한 형식적인 용납으로부터 몇몇 그리스도인 리더들로부터의 질책과 경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후자의 그리스도인 리더들은 무슬림들의 편지인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 안에 파묻힌 꾸란과 성경 사이에 있는 공통성에 대한 현혹적인 이미지들에 속지 않은 자들이다.
당신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책의 저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그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뛰어난 기독교 목사들, 학자들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이 알고 있단 말인가?"
이 수사학적인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나와 공동저자인 내 동료는 우리 본국 이슬람의 깊숙한 곳으로부터 거의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급히 낚여 채어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편지에 어떤 거미줄들이 쳐져 있는지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 – 기독교 안에서조차 사소한 것으로 전락되어 버린 그 사랑 – 이 우리를 강권하셔서 상대적인 무명함에서 나아와 교회에 경고하고 아직 결박 가운데 있는 형제들을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로 이끄는데 쓰임 받는 용감한 자들로 세우셨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결박된 자들을 해방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어둠의 방법으로 빛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예일대학의 ‘신앙과 문화의 화합을 위한 프로젝트 센터’에서 발간한 이 답신은 3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순진하고 진심에서 우러난 동의를 받았지만, 결국 그들을 기만한 셈이다.
일부 독자는 우리가 하는 말이나 비평이 사랑이 없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진리’는 반드시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하며, ‘진리’가 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도 없고 그분이 드러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공통의 말씀”에 대한 ‘진실’을 보게 될 여러분은 베일이 벗겨진 “공통의 말씀”의 실체에 대면했을 때 받을 충격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300명의 그리스도인들 응답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전 세계의 무슬림들 – 꾸란의 거짓된 진리에 의존하지 않고, 단순히 그리스도안에서 거듭남을 경험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구식의 방법’을 통해서 주님을 알게 된 이들-을 위험에 빠트릴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미치게 될 위험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슬림이었다가 이제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아직 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라.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생명과 가족과 문화적인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을 감수하며 살고 있는데, 그들이 만약 전세계 300명의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이슬람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미 가지고 있는 종교’라는 말에 동의했다는 것을 듣게 된다면, 사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 어떤 마음이 들지 한번 생각해보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당신이 주님 앞에서 기도하며 이 책을 읽고 그 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샘 솔로몬과 엘리야스 알-막디시
2008년 6월
서언(Preface)
‘공통의 말씀’과 ‘예일 답변’
2006년 9월 12일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연설을 하는 도중 이슬람에 대한 언급을 약간 하게 되었는데, 전 세계의 무슬림들은 교황이 언급한 내용에 대해 크게 항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2일, 38명의 최고의 무슬림 학자들과 성직자들은 이슬람에 대한 교황의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교황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2007년 10월 11일에는 보다 많은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과 성직자, 지식인들이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 라는 공개 서한을 교황 베네딕트와 여러 기독교 종파의 지도자들에게 보내왔다.
“꾸란의 명령에 따라 우리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며
우리의 믿음과 그 실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사랑에 대한 두 계명을 기초로
우리와 함께 나아갈 것을 초청한다”
이 “공통의 말씀” 편지를 읽은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보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글은 예일대학 교수 4명이 작성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며, 전 세계에서 300명에 달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 예일대학의 답변에 서명을 했다. 이 답변은 “공통의 말씀”에서 제안한 내용을 비판 없이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개서한이 의도했던 것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예일대학 학자들은 “공통의 말씀”에서 요구하지도 않은 일, 즉 무함마드가 ‘선지자’임을 인정하고 십자군 전쟁에 대해 사과하는 말까지 한 것이다. 또 그들은 “공통의 말씀”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핵심적인 공통의 토대’를 규명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무슬림들이 공개 편지를 통해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화해와 협력의 손을 내밀었다.
이에 대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화답의 의미로 손을 내밀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 원하는 우리의 소원대로
함께 손을 잡고 온 인류와 더불어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며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에서 이 답변을 쓴 학자들은 "공통의 말씀"의 의도를 한참 뛰어 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두 종교는 사소한 공통점이나
단지 어느 정도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핵심적인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공통점’도 없고,‘새로운’것도 아닌… 진실한 ‘초대’라 할 수 없는 편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공통의 말씀”이 정말로 교회와 기독교계에 보내는 새롭고 역사적인 초대인가? 최소한 예일 답변에 서명한 3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분명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들은 공통의 토대가 정말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무슬림 학자들의 이 의도적인 편지내용을 제대로 분석해보지도 않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꾸란 자체에서 공통의 토대를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몇몇 분들은 이 경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문서에 서명한 것을 철회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확고부동한 자세로 아직 남아있으며, 여전히 이 “공통의 말씀”을 통해 공통점뿐만 아니라 차이점에 대해서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독교의 소중한 이슈에 대해 높은 무슬림 성직자들과 함께 앉아 대화할 수 있는 황금기회이며 열린 문이라는 착각아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과 대화의 기회를 위해서 성경의 진리, 즉 우리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꾸란의 알라와 같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경시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 학자들은 사랑은 반드시 진리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것 같다. 착각을 일으키는 조각난 진리의 파편이 아닌 온전한 진리와 함께 가야 한다. 이 책은 “공통의 말씀” 속에 담긴 조각난 진리의 파편들로 인한 착각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내줄 것이다.
예일 답변을 보면 성경에서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강조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꾸란 어느 장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쓴 것 같다. “공통의 말씀”이 마치 이슬람과 기독교의 참된 공통의 토대를 제시하며, 대화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공통의 토대를 세우기를 바라는 초대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통의 토대가 있다는 착각을 주기 위해 꾸란과 성경에서 몇 개의 구절들을 뽑아 짜맞춘 것에 불과하며, 이는 세익스피어가 자주 사용한 ‘현상과 실제’(appearance and reality) 기법 –종종 사실이 보이는 현상과 다름을 증명한 기법- 에나 어울릴 법한 일이다.
“공통의 말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7세기에 무함마드가 죽기 전 비잔틴제국에 평화와 연합을 제의하며 보냈던 편지를 21세기에 맞게 다시 작성한 것일 뿐이다. 그때 이후로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 초청은 이슬람 법에 의한 정치적인 통치를 확장하고자 하는 그들의 요구를 무력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이슬람 군대가 진군해 들어가기 전 사용했던 초청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통의 말씀"에 새로운 역사적인 의의가 하나 있긴 있는데, 바로 이번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니파와 시아파를 막론하고 전세계 이슬람 학자들이 이 초청의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독교의 성경 구절을 사용(사실은 오용)"하여 초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통의 말씀”이 초청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진실한 초청은 아니다. 그것은 무함마드 시대 이후 계속 되어온 교회와 기독교를 향한 도전의 내용과 본질적으로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고, 같은 꾸란 구절(3장 64절)에 기초하고 있으며, 단지 21세기용 버전으로 각색한 것일 뿐이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공통의 말씀"에 사용된 용어들의 진의도 사실은 예일 답변에 서명한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아주 거리가 멀다.
이슬람의 사랑의 개념은 기독교의 사랑의 개념과 같은 것인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사랑을 비교하는 주제에 관하여 이슬람의 자료들을 조사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한가지 결론이 있는데, 바로 ‘꾸란에서 말하는 사랑이 기독교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아주 다르다는 점’에 무슬림 학자들이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그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결합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알라는 이런 의미로 보면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꾸란에서 "알라는 불신자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의 의미는 알라가 불신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는 신앙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도, 그들의 행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랑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아가페 사랑-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항상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요한복음 3:16 말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공통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주요 사항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이란 같은 무슬림 신자에게만 제한되는 사랑이며, 반면 기독교의 사랑은 요한복음 3:16에 나타난 것처럼 모든 사람을 향한 우주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공통의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험에 처해있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세계의 평화, 경제적인 안정, 개인의 안전? 이런 것들도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우리는 고려해야 할 훨씬 더 근본적인 사항들이 있다.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이 영적으로 잃어버린 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전통적인 이슬람교의 다와(dawa: 이슬람교로의 초대)를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성경의 진리에 노출되어 있지만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지자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했던 말씀(이사야 6:9)에 언급된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반면, 서명을 철회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300명의 기독교 학자들은 진리로 거짓에 맞서야 하는 의무보다 ‘평화’가 주는 좋은 점에 더 미혹된 것으로 보인다. 답변을 쓴 학자들은 만약 예수님께서 이 편지를 받으셨다면 보이셨을 반응과 대답하셨을 말씀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이슬람 학자들을 향해 애통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도전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3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너희들이 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셨을 것이다.
이 글은 완전한 것도 아니고 모든 논의의 끝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결론 부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확산을 위한 기독교의 확산을 원하는 것이 아니며, 진심으로 138명의 이슬람 학자들의 영혼을 생각하고 그들의 구원과 모든 무슬림들의 구원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콜린 다이
2008년 3월 런던
“공통의 말씀”에 대한 진실
“공통의 말씀”에 대한 진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에 진정한 대화를 위한 기초가 존재하는가?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이 작성한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이라는 공개서한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며 사실 ‘공통점’도 없는, ‘진실한 대화를 위한 진실한 초청’이라고 할 수 없는 편지이다. 대화란 적어도 두 진영이 동등한 입장에서 만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식으로 말하자면, ‘공통의 말씀’이란 ‘공통의 용어’ 또는 ‘정당한 제의’를 받아들이라는 일종의 초청으로서, 이는 철저하게 꾸란 3:64를 기초로 한 것이다.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여 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의 말씀으로 오라 (그리하여)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어떤 존재도 알라의 파트너로 연관시키지 않으며 누구도 알라 외에 다른 존재를 주로 삼지 말라 만일 그들이 배반한다면 실로 우리는 알라의 유일성을 믿는 무슬림임을 지켜보라"
그러나 꾸란 3:64에 대한 이슬람 주석을 정확하게 읽고 분석해보면, 그 의미가 무슬림들이 제안하는 ‘초청’의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통의 말씀"이라는 제안이 담긴 이 꾸란의 구절은 7세기경 무함마드가 나즈란(Najran)의 기독교 대표단을 초청할 때 처음 사용했던 말이며, 이는 곧장 그들에게 자신이 알라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메신저라는 것을 인정(꾸란 3:64)함으로써 공통된 말씀으로 나오라는 요구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 꾸란 3:64은 오늘날까지 무슬림이 그리스도인과 하는 모든 대화와 논쟁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인용문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무함마드가 살아있을 당시 나즈란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처음 사용된 이래로, 무함마드 사후 2년 비잔틴 제국을 정복할 때도, 그리고 그 이후 이슬람 제국의 많은 정복전쟁을 거쳐 1683년 비엔나의 문 앞에 이를 때까지 이 ‘초청’은 계속 되었다. 최근에는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공통의 말씀’이 여러 가지 거친 표현들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용어로 재포장되긴 했지만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 편지도 결국 같은 내용의 것이다. 따라서 ‘공통의 말씀’이 담고 있는 의미와 기본 목적은 매우 분명하다. 바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라는 내용인 것이다.
무슬림 성직자들이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꾸란 3:64의 많은 부분을 인용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구절에 주목하고 있다. 편지 속에서 이 구절은 숨김없이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베일 속에 완전히 감추어두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 독자가 읽을 때에는 그 의미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다양한 타프시르(Tafsirs: 이슬람 주석)의 해석을 따르지 않고, 또 이슬람 교리의 몇몇 핵심 구절의 해석을 바꾸어서 본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 의미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꾸란 본문이 의도하고 있는 본래 의미를 ‘감추는’ 방법인 타키야(Takiyya)가 "공통의 말씀" 전체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도, 정확히 그런 용어로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신의 ‘유일성이나 독자성’을 지지하는 의미로 보인다.
예를 들어, 꾸란 3:64의 ‘그 어떤 존재도 알라의 파트너로 연관시키지 않으며’ 라는 부분을 인용할 때 이 구절에 대한 이슬람의 정확한 해석을 언급하지 않고 알라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의 정확한 해석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알라의 ‘파트너’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파트너’ 또는 ‘주’를 섬기는 것은 알라의 유일성에 대한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만약 우리가 이슬람 주석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면, 무슬림들이 제안한 "공통의 말씀"이 결국 그리스도의 주되심(Lordship),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되심ⅰ), 구원자 되심을 부정하는 동시에 무함마드는 알라의 참된 선지자이자 최종 메신저임을 인정하라는 내용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꾸란 3:64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구절이며 꾸란의 다른 장들 역시 이 3:64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꾸란 61:6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불순종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실로 나는 너희에게 보내어진 알라의 선지자로서 내 앞에 온 모세오경(Torah)과 내 후에 올 아흐마드(즉, 무함마드)이란 이름을 가진 한 선지자의 복음(이슬람교)을 확증하노라…"
그리고 꾸란 7:157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성경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오경과 사복음서에 기록된 메신저이며 무학자 선지자인 무함마드를 따르는 이들…”
이와 같은 꾸란을 사실로 믿는 무슬림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과 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알라의 메신저(전달자)이자 최후의 선지자로서 무함마드가 올 것(꾸란 33:40)에 대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함마드를 거절했고, 모세오경과 사복음서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구절도 삭제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에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자이며, 이슬람법에 따라(꾸란 3:12)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할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꾸란 3:64와 이를 뒷받침하는 꾸란 구절들을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고, 무함마드가 살아있던 당시 처음 발행했던 ‘공통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그때의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나즈란 논쟁에서, 공통의 토대에 관한 사항들을 – 또는 공통의 토대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사항들을–이미 결정지었기 때문에, 남은 일은 공통의 토대를 적용하는 것 뿐이었다. 따라서 이웃 국가들에 ‘공통의 말씀’이라는 편지를 보낼 때 무함마드는 표면상으로는 ‘초청’이나 ‘공정한 제안’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미 침략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꾸란의 명령이라고 정당화하였다.
“(1)알라와 (2)마지막 날을 믿지 아니하며 (3)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4)진리의 종교(이슬람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꾸란 9:29)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서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너희 중에 그들을 친구로 삼는 자 있다면 그들 중 하나와 같다” (꾸란 5:51)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Mushrikun) 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복병하여 그들을 기다리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정기적인 기도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바칠 때에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리니 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ⅱ)”(꾸란 9:5)
아라비아 반도의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정복한 뒤, 무함마드는 꾸란 3:64에 근거하여 이웃한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공통의 말씀, 즉 평화로 나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편지 속에 언급된 에슬람 티슬람(eslam tislam)이라는 말은 ‘항복하라 그리하면 안전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칼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가진, 즉 이슬람에게 항복할 때에만 주어지는 이슬람 식의 평화인 것이다.〔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헤라클리우스에게 무함마드가 보낸 편지는 부록 A에 수록하였다]. 이 같은 말장난은 앞서 설명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의 왜곡과 비슷한 것이다. 이는 이슬람의 정식 교리인 타키야(Takiyya), 즉 ‘합법적인 속임수’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슬람이 곤경에 처할 경우 무슬림들은 필요한 속임수를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꾸란은 속임수를 행하라고 명령까지 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 무슬림 학자들이 자신들의 선생의 선례를 답습하여, 세계 평화가 그들이 보낸 “공통의 말씀”에 대해 기독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부드러운 말로 그 의미를 포장하여 마치 세계 정세를 안정시키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 두 종교가 화합하기 위한 “공통의 말씀”으로 나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두 종교가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공통의 토대를 갖고 있다는 주장에 넘어간 300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편지에 동의하며 공동 서명으로 답신을 보냈다. (이슬람 전문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꾸란3:64은 ‘평화’에 대해서도 사실상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종하고 무슬림이 되겠다거나, 아니면 최소한 무함마드가 최후의 선지자임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무슬림 학자들이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꾸란과 하디스를 성경과 연결시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통의 말씀”에서 ‘이웃 사랑’에 대한 꾸란의 가르침을 제쳐놓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성경구절과 함께 하디스에 나온 이웃 사랑에 대한 무함마드의 언급을 연결시키고 있다(알라의 유일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임). 이것은 교묘한 이중적인 말에 불과하며 다음의 이슬람법을 이해하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첫째로,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의 관계는 ‘충성과 거절’(무슬림들에게는 충성과 우정을, 비무슬림들에게는 거절과 적의를 표하는)교리에 의거한다. [아랍어로는 ‘알 왈라 와 알 바라’, Al Wala Wa al Baraa' 라고 한다.] 둘째로, 이슬람교의 유일신 사상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셋째로, 양자 간에 어떠한 대화가 오간다 할지라도, 무슬림들이 결코 그들에게 부과된 다양한 지하드의 의무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무슬림의 목표는 세계 어느 곳이든 이슬람교가 정치적 패권을 갖도록 지하드를 수행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이슬람 및 무슬림과의 진정한 ‘공평한 대화’가 무엇인지 제안하기 위해 위의 주제와 교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충성과 거절의 교리(Al Wala Wa al Baraa')
알 왈라(Al Wala)는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외적인 그리고 내적인 충절과 충성, 친밀함과 호의, 연합과 소속을 의미한다.(꾸란 49:10, 8:72)
바라(Baraa’)는 관계를 끊고 배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비이슬람적인 관습과 가르침, 관례, 전통, 축제 등을 거부하고, 혐오하며, 비난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비판하고 책망한다는 의미이며, 모든 비이슬람적인 유산과 삶의 방식들을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비무슬림들에 대해, 특히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고 그들에 대해 적대감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무슬림 교도들이 지켜야 할 의무이다.
모든 무슬림 학자들은 무슬림들이 불신자(Kuffar)에 대해 반드시 적대감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알라를 예배하는 것이며, 기도나 금식 같은 다른 종교 의무와 함께 알라가 직접 명령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세르 빈 야하 알 하니니 박사(Dr. Nasser Bin Yaha Al Hannini)는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것은 와하비즘 (Wahabism)도 아니고, 급진파에서 나온 급진 교리도 아니다. 이것은 진정으로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교의 한 부분이다.
무슬림 학자들은 꾸란과 순나의 가르침에서 ‘알 왈라 와 알 바라’의 근본 원칙을 세웠다. 이 교리의 핵심 요점은 다음과 같다.
(a) 불신자(Kuffar)에 대한 증오심을 지키고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며, 적대감을 드러내고 그들을 배격해야 한다고 꾸란에 명백히 기록되었음. (꾸란 8:73)ⅲ)
(b) 비무슬림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들을 사랑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그들이 승리하도록 돕는 것은 무슬림이 이슬람을 완전히 떠나게 할 수 있는 심각한 범죄임. (꾸란 5:51)
(c) 불신자들(Kuffar)에 대해 적대감과 증오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불신자들이 그것을 보고 느끼게 하여 결과적으로 불신자들을 약화시키고 무슬림 공동체를 강화시킴.(꾸란 60:4)
(d) 비무슬림들을 거절하고 배격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슬람을 거부함으로써 가장 큰 죄를 지은 이들이기 때문임. (꾸란 4:48, 3:19a, 3:85ⅳ))
(e) 적대감은 반드시 눈에 보이게 표현되어야 하고, 영원히 지속되어야 함. (꾸란 60:4)
(f) 무슬림은 비무슬림이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결코 믿어서는 안됨. (꾸란 3:28, 4:139, 5:57, 9:28, 98:6ⅴ))
(g) 어떤 형태로든지 비무슬림들(예를 들어 의복이나 말투 등)을 모방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호감의 표시이며, 무함마드는 ‘어떤 공동체의 특성을 모방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자는 그들 중 하나와 같다’라고 말하였음
압둘 레흐만 압둘 칼리크 박사(Dr Abdel Rehman Abdel Khaliq)는 자신의 저서에서 위와 같은 이슬람교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무슬림들이 해야 할 유일한 임무는 바로 불신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그가 굴복하거나 이슬람에 동화되도록 하여서, 작은 불씨를 제거하고 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다.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관계의 본질과 그 실체는 꾸란 8:39와 9:39에 나타난 것과 같이 적대감과 전쟁일 뿐이다.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관계에 대하여 공표된 모든 파트와(fatwa)들은 이와 같은 알 왈라 와 알 바라(Al Wala Wa al Baraa)교리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한 질문의 예들은 다음과 같다:
• ‘불신자들을 가까운 친구나 보호자로 택하는 것은 잘못(haraam)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십시오.
•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여성과 친구가 되는 것이 가능합니까? 아니면 그렇게 할 경우 심각한 처벌이 뒤따르게 됩니까?
•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향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품어야 합니까? 유대인들을 저주해도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을 저주하는 것도 무방합니까?
• 모든 종교의 연합을 요구하는 규정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 무슬림들이 추수감사절 같은 비무슬림들의 축제에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까?
•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비무슬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슬람 연구 및 파트와 위원회(Islamic Council of Research and Fatwa에서 발행한 파트와들을 부록 B에 실었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파트와들은 주류세력인 정통 이슬람에서 발행한 것들이며, 모든 무슬림들에게 구속력을 갖는다. 소위 온건주의 무슬림들은 이슬람 관련 문제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정통 무슬림 계통이 발행한 이런 파트와들에 대항하여 맞설 만한 새로운 파트와를 아직 단 하나도 발행한 적이 없다.
공통의 토대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은 앞으로 세계의 평화가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사이의 관계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꾸란에서 지시하고 있는 알 왈라 와 알 바라(Al Wala Wa al Baraa’)에 비추어 보아,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평화와 용서가 바로 기독교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5:9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 임이요’ 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쟁에 대하여도 야고보서 4:1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문제는 바로 비무슬림들에 대한 이슬람의 입장이다. 이슬람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세계가 이슬람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그날까지 무슬림으로 하여금 앞으로도 폭력적인 지하드에 계속 호소하도록 할 것이다.
지하드의 의무
이슬람에서 싸움, 살인, 전쟁, 그리고 폭력적인 지하드는 알라가 모든 무슬림들에게 명령한 의무사항이다: ‘투쟁(전쟁, 싸움)은 명령으로 너에게 주어진 것이다’. 힐랄리(Hilali)가 정확하게 꾸란 2:216을 번역한 내용을 보라.
“비록 좋아하지 않을 지라도 알라가 너희에게 성전(Jihad: 알라에 의한 성스러운 전쟁)을 명하였노라 그러나 너희가 싫어해서 복이 되는 것이 있고 너희가 좋아해서 악이 되는 것이 있나니 알라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시니라”
단식(sawm), 기도(salat), 자선(zakat)이 모든 무슬림이 지켜야 하는 성스러운 의무인 것처럼, 지하드(jihad)도 알라가 명령한 의무이다. 특별히, 상대방이 평화로의 초청(이슬람에 굴복할 것을 초청)을 거부했을 때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무슬림이 폭력적인 지하드를 벌이는 것은 의무이다
많은 무슬림 학자들은 지하드의 의무에 대해 광범위하게 그 목적과 함께 필요성을 잘 설명하였다. 알라의 명령을 찬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슬람을 전파하는 것인데, 먼저는 초청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무력사용도 불사해서 전파해야 한다.
이에 대한 꾸란의 구절ⅵ)과 하디스ⅶ)는 너무나도 많다. 이 모든 기록은 전부 무슬림에게 전 세계가 알라의 종교와 그의 가르침에 굴복할 때까지 폭력적인 지하드에 참여하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때로는 평화적인 방법을 택하지만, 강압적인 상황에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알라는 다음의 두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슬람 공동체(Ummah)가 불신자(kuffar)와 평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a) 이미 무슬림이 불신자들을 약화시키고 힘을 완전히 제거하여 그들을 굴복시킨 상태로, 불신자들이 먼저 평화를 요청할 경우
(b) 무슬림의 손실을 줄이고 더 큰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불신자와 휴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경우. 예를 들어, 무함마드는 칸다크 전투(Khandaq ditch, 무함마드가 수행한 대표적인 3대 지하드 중 하나)에서 가트판 부족(Ghatfan : 쿠라이쉬 부족의 중요 동맹)이 비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통해 그들과 조약을 체결했는데, 그는 메디나의 생산물 절반을 지불하는 대가로 가트판 부족에게 쿠라이쉬와의 동맹을 해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통해 무함마드는 자신의 적인 쿠라이쉬 부족을 약화시켰으며, 비무슬림들간의 동맹을 와해시켜서 결국 자신들이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처럼 폭력적인 지하드를 벌이는 것이 이슬람교의 의무라면, 과연 이를 중지시킬 수 있는 종교적 또는 법적 근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 의무는 단순히 무슬림들을 방어하고 무슬림들이 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만 제정된 것이 아니라 알라의 말씀을 모든 다른 종교와 사상보다 더 높은 최상의 자리에 위치시키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제정되고 법제화된 것이다.
꾸란에서 말하는 평화란, 비무슬림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꾸란 47:35는 ‘약해지지 말라 그리고 너희가 우세할 때 평화를 요구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다.
‘공통의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알 쿠르타비(Al Kurtabi), 이븐 카티르(Ibn Kathir), 샤카니(Shawkani), 와하디(Wahadi)와 같은 학자들은 모두 쿠르타비(Kurtabi)가 풀이한 꾸란 47:35의 의미에 동의하고 있다.
쿠르타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약해지지 말라. 평화를 찾는 적들에 대하여 약해지지 말라. 폭력을 중단하고 평화를 찾지 말라. 너희가 수적으로 우세하고 잘 무장되어 있을 경우 적들과의 전쟁을 중단하지 말라. 왜냐하면 알라께서 너희가 적들보다 우위에 있을 때에 평화를 추구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저명한 이슬람 주석학자인 이븐 카티르(Ibn Kathir)는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을 밝혔다: ‘결코 나태해져서 평화를 구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가 우위에 있고 알라가 너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이미는 너희가 수적으로 우세에 있고 충분히 무장되어 있다면 결코 불신자(kaffir)와 싸움을 멈추고 평화를 맺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들이 무슬림들보다 힘이 강할 지라도, 무슬림들이 가장 우월하고 뛰어나다고 알라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들이 강력할 때, 불신자들과 평화 조약을 맺는 것은 무슬림에게 유리하며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법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결국 다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샤리아(Shari’ah)에 따르면, 위와 같은 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예외도 있을 수 없다.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과의 평화를 추구하거나 평화관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 무슬림들이 전쟁에 지쳐있거나 불신자(kuffar)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무슬림들이 겁에 질려있을 때 조차도 마찬가지이다.
평화를 구하는 것- 즉, 전쟁이나 지하드를 포기하고 버리며, 불신자(Kuffar)와 영속적인 평화 또는 화해의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지하드 명령을 폐기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슬람을 배신하는 행위(kufur)이다. 알라가 지하드를 모든 무슬림의 필수적인 의무사항으로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부활의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무슬림들은 이맘이 지하드를 파르드 알 아인(Fard al E’in)으로 선포할 때 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 온 재산과 전 존재를 바쳐 지하드의 순교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
“공통의 말씀”의 저자들은 계속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평화와 상호이해를 위한 기반은 이미 존재한다. 그것은 두 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본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이슬람교의 가르침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무슬림에게 모든 비무슬림 교도,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알 왈라 와 알 바라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슬림이 알라를 경배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이다. 매 기도시간 마다 첫 번째 꾸란 구절을 반복하는 것은 적대감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 꾸란 구절은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에 대한 저주로 끝나기 때문이다.
꾸란이나 하디스 어디에도 비무슬림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지 않는다. 바로 그것 때문에 138명의 무슬림 저자들이 의미가 모호한 하디스를 인용한 것이다. 그 의미를 잘 살펴보면, 그 사랑의 대상은 유대교인이나 그리스도인을 배제한 것이며, 무슬림들 사이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무슬림들은 오직 무슬림만을 사랑할 수 있다.)
만약 꾸란과 성경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비교해본다면, 두 책이 전혀 다른 기초 위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데살로니가전서 5: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15~17)
반면 꾸란의 가르침은 정반대이다.
"사악함에 대한 보상은 그에 상응하는 악(함)이라" (꾸란 42:40)
다음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비교해 보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8)
그리고 꾸란을 보라
"너희가 우세할 때 약한 자가 되어 이슬람의 적들에게 평화를 구하지 말라 알라가 너희와 함께 하시어 너희 선행의 보상이 결코 줄어들지 않게 하시니라 (꾸란 47:35)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성경과 꾸란이 어떻게 공통의 토대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누가복음 9:5)
"피트나(Fitnah: 불신앙, 다신론, 즉 알라 외의 다른 신들을 예배하는 것)이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의 것이 될 때까지 성전하라" (꾸란 8:39)
"금지된 달(첫 번째, 일곱 번째, 열한 번째, 열두 번째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한 불신자들(Mushrikun)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포위할 것이며 복병하여 그들을 기다리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정기적인 기도를 드리며 이슬람 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하여 길을 열어 주리니 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꾸란 9:5)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태복음 26:52)
"그때에 주님(알라)께서 천사들에게 말씀으로 영감하여 나는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알라를 믿는 자들을 견고하게 하라.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치고 그들의 모든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게 치라" (꾸란 8:12, 17, 9:14, 61:4, 8:65, 2:216)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복음 5:39)
"알라를 따르는 길에서 너희를 대적하는 자들과 싸우고 어디서 그들을 만나든지 죽이라. 그들이 너희를 내쫓은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내어 쫓으라. 피트나(Fitnah: 불신앙 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투쟁)는 죽이는 것보다 더 악하니라. 그리고 메카의 성스러운 모스크에서는 그들이 너희를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싸우지 말라. 그러나 그들이 먼저 공격한다면 그곳에서도 죽여도 좋다. 그들은 불신자들에 대한 보상이다." (꾸란 2:190-19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야고보서 4:1)
"비록 좋아하지 앓을 지라도 알라가 너희에게 성전(Jihad: 알라에 의한 성스러운 전쟁)을 명하였노라 그러나 너희가 싫어해서 복이 되는 것이 있고 너희가 좋아해서 악이 되는 것이 있나니 알라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시니라" (꾸란 2:216)
꾸란 5:73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알라가 셋 중의 하나라고 하며 알라를 모독하는 자들’ 이라고 가르치는데 어떻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유일신 사상이 같은 것이라고 하겠는가?
"성서의 백성들(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지 말며 알라에 대한 진실 외에는 말하지 말라 마리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알라의 메신저이자 마리아에게 준 알라의 말씀이었으니 이는 알라에 의해 창조된 영이었노라 알라와 선지자들은 믿되 세분(삼위일체)이라고 말하지 말라! 멈추라! (그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꾸란 4:171ⅷ))
13세기 저명한 이슬람 학자인 이븐 티아미아이(Ibn Tyamiay)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누구든지 이슬람교나 무함마드의 샤리아가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불신자임을 이슬람교와 모든 무슬림들이 동의한다’ 라고 말했다.
무하마드 압둘 와하브(Muhammad Abdul Wahab)는 자신의 유명한 조약 ‘열개의 모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불신자나 다신론자를 불신자(kaffir)로 대하지 않거나 그들을 고쳐주려고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불신자이다.’
이븐 하잠(Ibn Hazam)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불신자로 부르는 일은 모두 동의한 것이다.’
“공통의 말씀”을 작성한 138명의 학자 중에서 위의 저명한 무슬림 학자들의 의견에 대해 “공통의 말씀” 편지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반이슬람적이라고 비판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유일성의 기초
꾸란 9:30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어떻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유일신 사상에 공통의 기초가 있을 수 있는가?: ‘유대인이 말하길 에즈라가 알라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알라의 아들이라 하니 이것이 그들의 입으로 주장하는 말이라 이는 이전에 불신한 자들의 말과 유사하니 알라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라 그들은 현혹되어 진실에서 멀리 떨어진 자들이라’ (꾸란 9:30)
유일신 사상과 다른 종교의 유효성에 대한 질문의 응답으로, 파트와 위원회는 알라 앞에는 오직 한 종교만 있으며, 그것은 바로 이슬람교이고, 이외의 모든 종교는 폐지되었다고 선언하였다.
다음은 파트와의 일부이다.
파트와 학술연구 및 발행 상임위원회(The Standing Committee on Academic Research and Issuing Fatwas)는 위원회에 접수된 사안(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 세 종교의 연합에 관한)과 이와 관련한 방송, 출판 매체의 의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 모든 무슬림이 동의하는 이슬람의 기본 신앙원칙(ijmaa’)중 하나는 이슬람 외에는 이 땅에 어떤 참된 종교도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다른 모든 종교와 법률을 폐지시키는 최후의 종교이다. 이슬람교 이외에 알라를 경배할 수 있는 종교는 지구상에 없다. 알라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종교를 완벽하게 하였으며, 너희를 위한 나의 선의를 완성하였고, 너희의 종교로 이슬람을 택하였다’(꾸란 5:3). ‘알라는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그는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꾸란 3:85).
• 둘째로, 이슬람교 신앙의 기본 원칙 중 다른 하나는, 알라의 책인 꾸란이 알라가 이 세상에 계시한 마지막 책이라는 믿음이다. 꾸란은 이전에 있었던 모세오경(Tawraat), 시편(Zaboor), 사복음서(Injeel)를 포함한 모든 책을 폐기하였으며, 그 안에 있는 진리를 증명하고 또 그 안에 덧붙여진 거짓을 밝혀내는 책이다. 따라서 꾸란 이외에 알라를 경배하기 위하여 계시된 책은 더 이상 없다. 알라는 ‘그대(무함마드)에게 그 이전에 계시된 성경(the Scripture)을 확증하는 책(꾸란)을 계시하나니 알라가 계시한 것으로 그들을 심판하되 너희에게 계시된 진리에서 벗어난 그들의 헛된 소망을 따르지 말라 (꾸란 5:48)’라고 말하였다.
• 셋째로, 꾸란에 의해 모세오경(Torah)과 사복음서(Injeel)가 폐기되었으며, 그것들의 내용은 첨가되거나 누락되었기에 성경은 변질, 왜곡되었다고 믿는 것이 의무이다.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Kuffar,쿠파르)일 뿐만 아니라 다신론자들(polytheists)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파트와 위원회는 이들 모두가 불신자들(또는 배교자들, kuffar)이며, 다신론자들(mushrikeen)라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부정하고 거부하였기에 불신자들이며, 알라 외에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다신론자들이라고 말한다.
무슬림 학자들이 두 종교간의 공통의 토대라고 밝힌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겠는가? 꾸란에서 다신론자이자 배교자라고 비난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 유일신론자들 사이에 어떻게 같은 토대가 있을 수 있는가?
무슬림 학자들이 말한 공통의 토대는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말한 소위 ‘잘못 인도받고 있는 자들(그리스도인들)’과 ‘스스로 바른 길을 가고 있는 자들(무슬림들)’ 사이에 정말 공통의 토대가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알라에 대한 복종
성경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였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요한복음 3:16, 로마서 5:8, 요한1서 4:19).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그분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에 대한 복종을 통해 절대자인 알라에게 복종해야 한다(꾸란 4:80, 3:31, 57:28). 무함마드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 바로 알라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다. 사실 알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꾸란 48:10).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선지자이다’라는 이 이슬람의 신앙고백은 타우히드 (Tawhid 유일신 사상) 교리에서 뺄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함마드가 선지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사이에 대체 어떤 공통의 토대가 있다는 말인가?
이웃 사랑
이웃 사랑의 필요성에 관하여 무슬림 학자들은 여러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를 인용하면서 이슬람에도 이웃에 대한 사랑과 긍휼을 보여야 할 필요성과 그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많은 명령들이 있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웃사랑이 알라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있어 중요한 한 부분이며, 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너희 이웃을 너희 자신과 같이 사랑하기 전까지는 너희는 믿음이 없는 자다’라는 무함마드의 말을 인용하며 이웃사랑이 빠진 알라에 대한 참 믿음과 사랑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웃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정한다거나,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웃사랑에는 반드시 관대함과 자기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무슬림들이 관대함과 자기 희생으로 사랑해야 하는 그 이웃에 과연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무신론자, 불신자, 다신론자, 이교도까지도 포함되는가? 아니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웃’이 단지 무슬림들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비무슬림 이웃에 대한 무슬림들의 사랑이 비무슬림들의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인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가?
비무슬림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이 과연 꾸란에서 명백하게 말하고 있는 이슬람 교리인 ‘알 왈라 와 알 바라’(Al Wala Wa al Baraa’)와 양립할 수 있는가?
저명한 무슬림 학자들이 ‘비무슬림 이웃을 향한 사랑’에 대한 꾸란의 가르침과 그 진의를 우리에게 과연 친절하게 알려줄 것인가?
"공통의 말씀"을 작성한 138명의 학자들 중 누가 과연 ‘알 왈라 와 알 바라’ 교리가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며 이를 무효화하는 파트와를 발표할 것인가?
300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사과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 중 누가 과연 ‘푸투핫 알 이슬라미야’(Futuhat al Islamiya)라는 잔인한 이슬람 전쟁 및 정복에 대해서 사과할 것인가?
‘공통의 말씀’을 작성하고 서명한 학자들 중 사우디 출신인 압둘 쿠두스 알 살라(Abdel Kudus Al Salah)박사와 알 쉐이크 압둘라 빈 마흐푸즈 빈 비야(Al Sheikh Abdulla bin Mahfouz bin Biyah) 박사가 그 편지 내용처럼 그들의 나라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웃 사랑의 증거로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기독교 이웃들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 청원이라도 해줄 것인가?
선지자과 그의 이웃
무함마드는 메디나 지방의 유대인들을 추방한 뒤, 이어서 아라비아 반도 전체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교인들을 추방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또 명령했다. 이 내용은 아흐멧의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라비아 반도에서 모든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고 오직 무슬림들만이 그곳에 살게 할 수 있다면….’ 이 명령은 두 번째 칼리프인 오마르가 AD 634년 ‘성서의 백성들’(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모두 추방하면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슬림 학자들이 말하는 이웃은 대체 누구인가?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나는 다신론자들(mushrikeen,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가운데 정착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무슬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라고 말했다.
138명의 학자들이 적은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이슬람의 참된 가르침이라면, 이슬람 연구 및 파트와 위원회(Islamic Council for Research and Fatwa)에서 비무슬림,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은 같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였던 과거의 파트와를 무효화시킬 것인가ⅸ)? 또한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에게 자기 자산을 임대한 무슬림은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를 범한 것이라고 선언한 이븐 카임(Ibn Qayeem)의 파트와를 과연 폐기시킬 것인가?
그리고 비무슬림 교도에게 증오와 적대감을 품으라는 명백한 명령을 받은 무슬림 학자들이 어떻게 비무슬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는가? 꾸란 전체에서 이 적대감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으며,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꾸란은 무슬림들에게 불신자들(kuffar) - 성서의 백성들(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 다신론자들(mushrikeen), 위선자들-을 향한 적대감을 마지막 심판과 부활의 날까지 계속 품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진정한 대화를 위한 올바른 출발점
만약 무슬림들이 정말로 이웃들과 평화로운 공존을 하기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1. 알 왈라 와 알 바라(Al Wala Wa al Barra’)는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아무 효력도 없으며, 의미 없는 것임을 선언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교인들을 불신자, 배교자, 다신론자, 원숭이와 돼지의 자식들이라고 무고하게 폄하한 모든 꾸란 구절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3.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모든 이슬람 세계에서 배교법을 폐지해야 한다.
4. 모든 종교는 법 앞에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 어느 종교도 더 우월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5.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며 불경한 사람은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6. 종교나 인종에 따른 차별이나 구분 없이 모든 인류의 평등함을 인정해야 한다.
7. 무슬림이나 비무슬림을 막론하고 모든 탁피르(takffir)의 관습을 버려야 한다.
이웃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참된 의도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분명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이 (알카이다나 이를 추종하는 그룹을 제외하고) 이슬람 세계의 전체의 생각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 숨은 의도를 가린 채 이슬람교를 평화롭고 선한 종교로, 심지어 기독교와 공통된 요소를 가진 종교로 보이고자 시도한 "공통의 말씀"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아주 이상하고 불만족스런 주장을 펼친다. 무슬림 학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교가 평화의 모델이며, 기독교와 똑같이 알라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의 주장이 그들 자신의 책들 –꾸란, 순나, 하디스, 타프시르, 파트와- 등에서 주장하는 바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강력한 그룹이 하나 일어나서 이슬람교는 21세기 시대의 필요와 규범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이슬람 샤리아법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꾸란의 많은 내용들은 더 이상 적용할 수 없음을, 또한 모든 인류-특히 개종한 무슬림까지-를 존중하는 새로운 이슬람의 출현을 환영한다고 말해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관계에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현상은 아마도 1400년이 지난 지금, 무슬림들이 이슬람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기 시작한 일일 것이다. 오랜 기간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도록 압력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수많은 무슬림들은 아무런 압력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Lord)와 구원자(Savior)’로 영접하였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최고의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 신학교 또는 교육기관)에서 이슬람교를 배웠으며, 개종을 할 경우 어떠한 형벌을 받을지 알고도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영원한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138명의 무슬림 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삶을 살펴보고, 구원의 근원을 찾기를 희망한다. 요한복음 3:1~3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는 모든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요 구원자로 영접하게 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수백만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수천 명의 무슬림들이 이미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 초청은 사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에게 하신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구약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 45:22).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사역 중에 마태복음 11:28~30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엘리야스 알-막디시와 샘 솔로몬 지음
2008년 3월
미 주
ⅰ) 알라가 마리아의 아들을 메시아(예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메시아(예수) 가로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여 나의 주님이고 너희의 주님인 알라만 경배하라 알라를 불신하는 자 알라께서 그들에게 천국을 금하시고 불 지옥에 거하게 하시나니 죄인들(다신론자 및 악행자)에게는 구원자가 없노라 (꾸란 5:72)
그들은(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구약과 신약에서 금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알라 외에 아흐바르(랍비)와 루흐반(수도자)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그들의 주님으로 경배하나 알라 외에 누구도 경배하지 말라 그분 외에는 신이 없노라 그들이 알라와 더불어 섬기는 것 위에서 알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꾸란 9:31)
알라가 아들을 두셨다 말하는 이들에게도 경고하노라 (꾸란 18:4)
그들은(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이단자들) 알라가 아들을 낳았으니 그분께 찬미를 드리라고 말하나 그렇지 않노라 천지의 모든 것이 알라께 있으며 이 모두가 알라께 순종(예배)하노라 (꾸란 2:116)
일러 가로되 알라께 모든 영광을 드리라 그분은 아들도 없으며 파트너도 없노라 그분은 또한 어떤 보호자(조력자, 보호자, 지원자)도 필요치 아니하시니 그분의 위대함과 영광을 찬미하라 (꾸란 17:111)
알라는 아들을 두지 아니하셨으며 그분을 대적할 어떠한 신도 없노라 만일 다른 많은 신들이 있었다면 각 신들은 자기가 창조한 것들을 빼앗아 갔을 것이며 다른 신을 지배했으리라 알라여 그들이 증언하는 것을 초월하여 영광을 받으소서 (꾸란 23:91)
마리아의 아들이며 알라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는 살해되지도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히지도 아니하였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 하는 자들은 의심하는 것이며 그들이 (확실히)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할 뿐 그는 살해되지 아니했노라 (꾸란 4:157)
그리스도는 알라의 종이 되는 것을 경멸하지 아니했으니 가까이 있는 천사들도 그랬노라 알라께 경배드리기를 꺼려하는 자와 교만한 자 모두를 그분에게로 모이게 하리라 (꾸란 4:172)
알라가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 말하는 이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 어느 누구도 알라의 벌을 막지 못하리니 그분의 뜻이라면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그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하게 되노라 천지의 권능이 알라에게 있으며 그 사이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며 뜻이 있을 때 창조하시니 알라는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시니라 (꾸란 5:17)
ⅱ) 피트나(Fitnah: 다신주의, 불신앙 및 그로 인한 투쟁)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의 것이 될 때까지 성전하라 만일 그들이 (알라 이외의 신에게 예배하기를)단념한다면 실로 알라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 (꾸란 8:39)
그들에 대항하여 투쟁하라 알라는 너희의 손으로 그들을 벌하사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여 너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시며 믿음이 있는 백성의 마음을 치료하여 주시니라 (꾸란 9:14)
믿는 사람들이여 나의 적과 너희의 적(불신자와 다신론자 등)을 친구로 하여 너희에게 도래한 진리(즉 이슬람교의 유일신론 및 꾸란과 무함마드)를 거역하고 알라를 믿는다 하여 선지자와 너희 자신들을 추방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려 하느뇨 (꾸란 60:1)
실로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중에 불신자들(이슬람교와 꾸란과 선지자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 자들)과 무쉬리쿤(다신론자들, 기독교와 유대교도 포함)은 불 지옥에 있게 되리니 그들은 가장 사악한 무리들이라 (꾸란 98:6)
ⅲ) 신앙인들은 불신자들을 신앙인들에 우선하여 친구로 선택하지 아니하도다 그렇게 하는 자 있다면 알라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나니 항상 경계하여 그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보호하는 길 밖엔 없노라 알라는 너희로 하여금 그분을 기억케 하여 주시니 최후의 목적은 알라에게로 가니라 (꾸란 3:28)
믿는 자들이여 불신자들(이교도, 유대인, 그리스도인, 위선자)을 (너희의)친구(조언자, 상담가, 보호자, 조력자, 친구 등)로 택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헤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그들은 단지 너희가 파괴되기를 바랄 뿐이라 그들의 입에서 증오가 발산되며 그들의 마음은 더욱 사악하도다 알라는 너희에게 그 말씀(Ayat: 증명, 증거, 시)을 설명했나니 지혜가 있다면 알게 될 것이라 (꾸란 3:118)
믿는 자들이여 불신자들을 친구(Auliya’: 보호자, 조력자, 친구)로 택하지 말라 너희는 너희 자신에 모순되는 명백한 예증을 알라께 원하고 있느뇨 (꾸란 4:144)
믿는 자들이여 너희 종교를 조롱과 오락으로 하는 자들을 친구(Auliya’: 보호자, 조력자,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알라만을 두려워하라 (꾸란 5:57)
불신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니 만일 너희(전세계 무슬림 모두가 함께)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즉, 동맹을 이루어 한명의 칼리프-이슬람 유일신 사상의 알라 종교가 세상 전체를 지배하도록 하는 무슬림 세계 전체의 지도자- 지배하에 연합체를 이루지 않는다면) 지상에는 혼동(다신론 출현)과 큰 재해(Fitnah: 전쟁, 전투, 다신교 등)가 있으리라 (꾸란 8:73)
믿는 사람들아 너희 아버지들과 형제들이 믿음보다는 불신을 택한다면 그들을 보호자(Auliya': 지원자, 조력자)로 택하지 말라 하였으니 그들을 보호자로 하는 자는 누구든지 우매한 자들(Zalimun: 범죄자)이라 (꾸란 9:23)
일러 가로되 너희 선조들과 너희 후손들과 너희 형제들과 너희 아내들과 너희 친척과 너희가 획득한 재산과 거래가 없을까 두려워 하는 상품과 너희가 바라는 주거지들이 알라와 선지자와 알라의 길에서 성전하는 것보다 귀중하다면 기다리라 알라께서 명령(torment: 고문)이 있으리라 알라는 우매한 백성(Al-Fasikun: 알라를 반역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을 인도하지 아니하시리라 (꾸란 9:24)
믿는 사람들이여 나의 적과 너희 적(즉, 불신자 및 다신론자 등)을 친구로 하여 너희에게 도래한 진리(이슬람교의 유일신론과 꾸란, 무함마드)를 거역하고 알라를 믿는다 하여 선지자와 너희 자신들을 추방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려 하느뇨 (꾸란 60:1)
ⅳ) 실로 알라는 그분에 비유하려 한 자를 용서치 아니하며 그 외에는 그분의 뜻에 따라 용서를 베푸시나 알라에 비유하려 하는 자는 죄를 조성하는 것이라 (꾸란 4:48)
알라의 종교는 이슬람 뿐이며 (꾸란 3:19)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 결코 수락되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 (꾸란 3:85)
ⅴ) 신앙인들은 불신자들을 신앙인에 우선하여 친구로 택하지 아니하도다 그렇게 하는자 있다면 알라에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나니 항상 경계하여 그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보호하는 길밖엔 없노라 알라는 너희로 하여금 그분을 기억케 하여 주시니 최후의 목적은 알라에게로 가니라 (꾸란 3:28)
신앙인들이 아닌 불신자들을 동반자로 택하는 자들이 있노라 그들은 이들이 원하는 것이 영광이란 말이뇨 실로 모든 권능은 알라께 있니라 (꾸란 4:139)
믿는 자들이여 너희 종교를 조롱과 오락으로 하는 자들을 친구(Auliyâ': 보호자, 조력자)로 삼지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유대인, 그리스도인)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알라만을 두려워하라 (꾸란 5:57)
믿는자들이여 실로 불신자들은(Mushrikûn: 다신론자, 배교자, 우상숭배자, 알라의 유일성과 무함마드의 메시지를 믿지 않는 자들) 불결(najasun)하나니 그들로 하여금 그해 이후 (메카에 있는)하람사원에 접근하지 않도록 하라 너희가 거래의 손실로 가난을 두려워 한다면 알라는 그분의 은혜로 너희에게 양식을 주시리라 실로 알라는 앎과 지혜로 추만하시니라 (꾸란 9:28)
실로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중에 진리를 거역한 자들(이슬람 종교, 꾸란, 무함마드의 예언을 믿지 않는 자)과 불신자들(Mushrikun)은 불지옥에 있게 되리니 그들은 그 안에서 영주하매 가장 사악한 무리들이라 (꾸란 98:6)
ⅵ) 그분이 복음과 진리의 종교(이슬람교)를 선지자(무함마드)에게 보내어 그것을 모든 종교(다신론자, 배교자, 우상숭배자, 알라의 유일성을 믿지 않는자) 위에 있도록 하시었으니 불신자들이 또한 증오하더라 (꾸란 9:33)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Jizyh)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그들은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 (꾸란 9:29)
박해가 사라지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의 것이 될 때까지 성전하라 만일 그들이 단념한다면 실로 알라는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 (꾸란 8:39)
ⅶ) 아비무사(Abi Musa)의 보고에 따르면, 한 남자가 알라의 선지자에게 가서 ‘알라를 위하여 힘과 수비대, 위선자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을 보았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알라의 사도는 그의 말씀을 높이기 위해 싸우는 자가 바로 알라를 위하는 자라고 하였다. 아흐멧 18722, 아니사이 3085, 부 다우와드 2156, 아티르미지 1570, 알 부카리 2599, 6904에 보고됨
이븐 우마르(Ibn Umar)의 보고에 따르면, 유일한 알라만을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 알라가 사도인 나에게 칼을 주고 이 땅에 보낸 것이며, 알라의 명령을 거역한 자들과 그러한 무리 가운데 있는 자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아흐멧 4869, 9109
박해(Fitnah: 불신앙, 알라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가 사라질 때까지 그들에게 대항하라 이는 알라를 위한 신앙이니라(무함마드를 믿는다는 의미) 그들이 박해를 단념한다면 우매한 자들(Az-zalimun: 다신론자, 행악자)을 제외하고는 적대시 하지 말라 (꾸란 2:193)
타밈 아다리(Tameem A’dari)의 보고에 따르면, 시간이 계속되는 것처럼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지 세상의 나라가 이슬람을 믿을 때까지 알라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아흐멧16344.
아운시 빈 말릭에 따르면, 불신자들이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임을 인정할 때까지 저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알라의 사도가 받았다. 불신자들이 신앙고백 반복하며 치블라(메카를 향한 기도 방향), 희생제물을 먹기, 이슬람의 기도를 따르게 된 이후로 그들의 피를 흘리거나 그 부를 빼앗는 것은 금지하였다. 아흐멧1289, 알부카리6413. 알라의 사도 중 아부 후라이라(Abu Huraira)는 불신자들이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라는 신앙 고백을 암송할 때까지 저들과 싸우고 저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만약 이교도들이 신앙고백을 한다면, 더 이상 피를 흘리거나 재물이나 자산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알라가 보호자가 된 것이다. 31, 32, 33, 아흐멧 8188 부카리 24
ⅷ) 더 많은 가르침은 꾸란5:17, 72, 73, 14에 있음.
알라가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라 하니 저들은 분명히 불신자들이라. 무함마드라 이르기를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벌을 막지 못하리니 그분의 뜻이라면 마리아의 아들 예수와 그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것이 멸망하게 되노라’ 또한 ‘천지의 권능이 알라에게 있으며 그 사이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며 뜻이 있을 때에 창조하시니 알라는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시니라’. 알라가 셋 중에 하나라고 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라.
ⅸ) 부록 B에 파트와 참고
부 록
부록A : 비잔틴 황제에게 보낸 편지
부록B : 파트와 (Fatwa)
부록C :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
부록D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부록 A: 무함마드가 비잔틴 황제에게 보낸 편지
서기 630년 무함마드는 비잔틴 제국(콘스탄티노플의 헬라 제국)의 황제인 헤라클리우스에게 ‘eslem teslem’, 즉 ‘공통의 말씀으로 오라’는 초대편지를 보냈다. 본 부록에는 아래와 같이 최초로 쓰여진 “공통의 말씀”편지들 중 하나의 원본(사진)과 아랍어 본문, 그리고 영어 번역본을 수록하였다.
The translated text Muhammad’s letter to Heraclius of Byzantium
In the name of Allah the compassionate and merciful,
From Muhammad messenger of Allah to Mighty Heraclius of Byzantine peace on those who followed the guidance, hereafter, I invite you with the invitation of Islam islem teslem surrender and be safe, if you embrace Islam Allah will double your portion but if you refuse on you will be [committing] the sin of being Ariuseen (cultic) Sura 3:64 Say (O Muhammad): "O people of the Scripture (Jews and Christians): Come to common terms, between us and you, that we worship none but Allah, and that we associate no partners with Him, and that none of us shall take others as lords besides Allah. Then, if they turn away, say: "Bear witness that we are Muslims"
자비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알라의 선지자인 나 무함마드가 비잔틴 제국의 위대한 황제 헤라클리우스에게 초청하노니, 바른 인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이슬람에 복종하라! 그리하면 안전할 것이다(eslem teslem). 알라와 이슬람을 믿는다면, 두 배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꾸란3:64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성서의 백성들이여(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의 말씀으로 오라 (그리하여)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어떤 존재도 알라의 파트너로 연관시키지 않으며 누구도 알라 외에 다른 존재를 주로 삼지 말라 만일 그들이 배반한다면 실로 우리는 무슬림임을 지켜보라"
부록 B: 파트와(Fatwa)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수많은 파트와(Fatwa)가 있는데, 그 중 일부를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무슬림 학자가 작성한 파트와 전문을 보기 원한다면 해당 홈페이지를 참고하십시오.
참고사항: 이 책의 본문에서는 아랍어 단어를 사용하고 영어로 옮길 때 가능한 한 통일시키고 표준화하려고 노력했는데, 부록(파트와)에서는 무슬림 학자들이 파트와를 작성할 때 쓴 표기를 그대로 옮김.
Question 1.
"불신자들(Koafirs)을 친구나 보호자로 택하는 것은 해악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Answer 1.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다와(da’wah) 지도자들과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몇 가지 중요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과 같은 행위는 무슬림의 금기사항입니다:
1. 무슬림들보다 비무슬림을 더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2. 비무슬림들에게 결정을 위임해서는 안 됩니다.
3. 비무슬림들을 좋아하고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4. 비무슬림들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거나 그들을 도와서는 안 됩니다.
5. 비무슬림 사회의 구성원이 되거나, 그들의 무리(parties)에 참여하여 그들의 수를 늘리는 행위는 해서는 안되며, (필수 불가결한 경우를 제외하고) 비무슬림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거나, 군대에 입대하거나, 또는 무기개발을 돕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6. 무슬림 국가에 비무슬림 국가의 법이나 규율을 도입해서는 안 됩니다.
7. 비무슬림과 어떤 식으로든 친구가 되거나 그들을 지원자로 삼아서는 안 되며, 그들과 동맹을 맺거나 연합해서도 안 됩니다.
8. 비무슬림과 화해하거나, 이슬람교에 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는 금지입니다. 비무슬림들이 알라의 이적들에 대해 농담할 때 그들과 함께 앉아서 참여하는 것도 이에 포함됩니다.
9. 비무슬림을 신뢰하거나 그들의 충고와 상담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무슬림들은 비무슬림이 무슬림들의 비밀을 알아내 해를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10. 비무슬림이 무슬림의 상사가 되어 무슬림에게 굴욕감을 주거나, 업무를 운영하고, 무슬림들의 종교 의무를 방해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비무슬림을 무슬림 집안의 도우미로 고용해 무슬림 가족의 사적인 생활을 보게하고 아이들을 불신자로 키우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비무슬림을 무슬림 국가에 노동자로 데려와 근로자, 운전기사, 하인, 유모 등으로 가정에 고용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 아이들을 불신자들의 사악한 학교, 선교단체 교육기관, 사악한 대학에 보내지 말아야 하며 무슬림들이 불신자 가족들과 함께 살도록 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11. 불신자들의 의복, 외모, 말투 등을 모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모방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며, 무함마드는 이에 대해 ‘불신자들을 모방하는 사람은 그들 중 하나와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의 의복이나 습관, 외모, 행위 등은 그들의 특성을 나타내므로, 모방해서는 안 됩니다. 턱수염을 깎거나 콧수염이 길게 자라게 해서는 안 되며, 또한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복이나 음식, 음료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의 언어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12. 필요 이상으로 불신자들의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아프거나, 핍박이 있거나, 또는 도저히 다른 나라로 이민 갈 방법이 없는 경우만 예외로 인정합니다. 또는 해당 국가에서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한 종교적 목적(da’wah)으로 거주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경우를 제외하고 불필요하게 불신자들의 국가에 체류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선지자가 말하기를, ‘불신자들과 사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13. 불신자들의 문명과 문화를 추앙하거나 불신자들을 옹호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들의 잘못된 사상과 부패한 종교에 대해서 주의하지 않고, 그들의 행동양식과 기술을 높이 평가해서는 안되며, 특히 이슬람력이 아닌 서방 달력(기독교의 성일 및 축제가 표시된 그레고리안 달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레고리안 달력(Gregorian Calendar,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달력)은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것으로서 메시아 탄생 추정일과 연관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예수’의 종교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이 달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축일과 종교적 상징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를 금지합니다.
14. 불신자들의 축제를 도와주고 축하행사가 열리는 곳에 참석하여 함께 축하하는 것은 금지입니다.
15. 불신자들을 위하여 알라의 자비와 용서를 구해서는 안 됩니다.
위의 예들은 ‘무슬림들이 불신자들(kuffar)과 가까운 친구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해줍니다. 알라께서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하고 신앙을 강하게 해주기를 기도합니다. 알라는 우리의 도움의 근원이십니다.
Sourse 1.
Sheikh Muhammed Salih Al-Munajjid
Question 2.
"매우 훌륭한 비무슬림 여성이라면, 이 비무슬림 여성의 종교를 무시하지 않고 친구로 지내도 괜찮습니까? 아니면 만약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여성을 친구로 대할 경우 심각한 처벌을 받게 됩니까?
Answer 2.
불신자 여성과 무슬림 여성이 친구가 된다면, 이는 분명 무슬림 여성의 종교적 헌신을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무슬림 여성의 태도와 행동 양식은 무슬림 여성의 태도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무슬림 여성은 이슬람 종교에 따라 알라를 경배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비무슬림 여성의 이런 태도와 행동양식은 무슬림 여성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무슬림 여성의 종교적 헌신을 흐릴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무슬림과 친구가 되면, 비무슬림들의 종교적 의례와 축제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인정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결국 ‘알 왈라 와 알 바라’ 의식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몇몇 어리석은 자들은 불신자들이 영원히 지옥에 거하게 될 것- 우리는 알라 안에서 평안을 얻지만 -이라는 알라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데에까지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선지자 무함마드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과는 결코 친구가 되지 말 것이며, 함께 음식도 나누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알 티르미디 2935, 아부 다우드 4832, 이븐 히반 사히 2/314, 사히 알 자미 7341)
그렇다고 해서,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여성과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비무슬림 여성이 많이 아픈 경우나, 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방문하는 경우는 괜찮습니다. 다만 정서적으로 친밀해지거나 이교도의 축제나 성일에 참여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합니다. 그리고 방문과 선물을 주는 목적은 불신자 여성을 이슬람으로 초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셰이크 살리 알 파우잔(Shaykh Saalih al-Fawzaan)도 ‘이교도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방문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단지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서 불신자들을 방문하는 일은 엄하게 금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무슬림들은 불신자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멀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Source 2.
Question 3.
꾸란에서 알라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무슬림들을 가장 대적하는 이들이 유대인과 다신교도들(Al Mushrikoon)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대는 무슬림들에게 가장 사랑을 나타내는 이들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요’라고 말하는 이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꾸란 5:82)
요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이슬람에 적대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유대인을 저주해도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을 저주하는 것도 무방합니까? 이 문제가 제게 큰 고민이 됩니다.
Answer 3.
위의 구절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저주를 해야 할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진리(이슬람)를 들었을 때 믿고 따르기로 결정한 겸손한 그리스도인만을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질문자가 궁금해하는 구절의 의미입니다: "그대는 무슬림들을 가장 대적하는 이들이 유대인들과 다신교도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대는 무슬림들에게 가장 사랑으로 대하는 이들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요’라고 말하는 이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 가운데 교만하지 않는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본래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진리(이슬람)를 알게 되었을 때 무슬림으로 개종하기로 결정하고 이슬람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위대한 학자인 이븐 알 카임(Ibn al-Qayyim)도 위의 꾸란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기독교 전승대로 무함마드가 알라의 선지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곧장 이슬람을 믿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무함마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저주하라는 가르침은, 부카리(al-Bukhaari)와 무슬림(Muslim)의 하디스 나 아이샤(무함마드의 아내)의 사히(Saheeh)에서 셀 수 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알라의 선지자인 무함마드는 병상에서 ‘선지자의 무덤을 경배의 장소로 택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라의 저주가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알라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꾸란에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저주를 피할 수 있습니까?
"알라가 마리아 아들을 메시아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다" (꾸란 5:72)
"알라가 셋 중의 하나라(삼위일체)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이다" (꾸란 5:73)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앙과 잘못된 길로 인도되었다고 말해주는 구절은 이외에도 더 있습니다. 그들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서는 질문자가 인용한 구절(5:86)의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으며, 이는 알라가 남긴 말입니다:
"그러나 꾸란의 말씀(증명, 증거, 구절, 교훈, 싸인, 계시 등)을 불신하고 버리는자들은 지옥 불에 거하게 될 것이라" (꾸란 5:86)
Source 3-1.
셰이크 이븐 이브라힘. ‘Majallat al-Buhooth al-Islmaiyya’, 58/ 36~39
평화 조약 체결에 관해서는 www.islam-qa.com/index.php
Question 4.
종교간의 연합을 요구하는 규정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Answer 4.
파트와 학술연구 및 발행 상임위원회(The Standing Committee on Academic Research and Issuing Fatwas)는 위원회에 접수된 사안(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 세 종교의 연합에 관한)과 이와 관련한 방송, 출판 매체의 의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세 종교의 연합에 대한 명령은 대학이나 공공 광장에 모스크, 교회, 유대회당을 지을 때 한 장소에 건축하자는 논의와 꾸란과 모세오경(Torah), 사복음서(Injeel)를 한 책으로 인쇄하자는 논의에 관한 것이며, 이와 관련한 컨퍼런스, 세미나, 회의 등이 동서양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발표하는 바입니다:
모든 무슬림들이 동의하는 이슬람의 기본 원칙(이즈마: ijmaa') 중 하나는 이슬람 외에 이 땅에 참된 종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그 이전의 다른 모든 종교와 법률을 폐지시키는 최후의 종교입니다. 이슬람 외에 알라를 경배할 수 있는 종교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알라는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그는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꾸란 3:85). 무함마드는 그 어떤 종교도 아닌 이슬람을 이 세상에 전파하였습니다.
둘째로 또 하나의 이슬람교 원칙은 알라의 책인 거룩한 꾸란이 알라가 이 세상에 계시한 책들 중 마지막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꾸란은 이전에 있었던 모세오경(Tawraat), 시편(Zaboor), 사복음서(Injeel)를 포함한 모든 책들을 폐기시켰습니다. 따라서 알라를 경배하기 위하여 계시된 책은 꾸란 이외에 더 이상 없습니다.
꾸란에 의해 모세오경(Tawraat)과 사복음서(Injeel)는 무효화되었으며, 성경은 내용이 더 첨가되거나 누락됨으로써 본래 내용에서 변질되고 왜곡되었다고 믿는 것이 모든 무슬림들의 의무입니다.
"스스로 직접 성서를 써서 이것이 알라로부터 온 것이라 말하며 (그것을 통해) 약간의 수입을 얻고자 하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그것을 손으로 쓴 자들과 그것으로 인해 수익을 얻는 자들 모두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꾸란 2:79)
"그들 중에는 그들의 혀로 그 성서를 왜곡하여 그것이 성서의 일부라고 너희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무리가 있으나 그것은 성서의 일부가 아니라 그들은 ‘이것이 알라로부터 온 것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알라로부터 온 것이 아니거늘 그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알라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꾸란 3:78)
따라서 아무리 과거의 성경 계시들 가운데 옳은 것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이슬람에 의해 다 폐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의 것들도 모두 왜곡되었고 변질된 것입니다.
이슬람의 기본 신앙원칙 중 하나는,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이슬람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불신자들(kuffar)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불신자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야 하고, 또한 알라와 알라의 선지자, 무슬림의 원수이며 지옥에 가게 될 사람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과 샤리아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한데 모아 같은 틀에 집어 넣는 것은 매우 악한 행위입니다. 이는 진리와 거짓을 한데 섞으려는 것이며, 이슬람을 파괴하고 그 기초를 허무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무슬림을 배교자로 만들려는 행위입니다.
이와 같은 나쁜 시도로 인해 이슬람과 이교도,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의 구분이 없어지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무슬림과 이교도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의 장벽을 붕괴시킬 수도 있으며, 무슬림에 대해서는 충성과 호의를 베풀고, 이교도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가지라는 ‘알 왈라 와 알 바라’(al-Walaa’ wa’l Baraa) 정신이나 이 세상이 알라의 말씀으로 지배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지하드와 전쟁에 대한 투지를 흐릴 수도 있습니다.
"알라와 마지막 날을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시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즉,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살육하라" (꾸란 9:29)
"그들이 너희들 모두에게 투쟁하듯 모든 불신자들(Mushrikoon: 다신론자, 이교도, 우상숭배자, 알라의 유일성을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을 향해 성전하라 실로 알라는 정의로운(신앙의 의무를 다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꾸란 9:36)
"믿는 자들이여 불신자들(이교도, 유대인, 그리스도인, 위선자)을 친구(조언자, 상담자, 보호자, 조력자,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타락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단지 너희가 파괴되기를 바랄 뿐이라 그들의 입에서 증오가 발산되며 그들이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것은 더욱 사악하도다 알라는 너희에게 그 말씀을 설명했나니 지혜가 있다면 알게 될 것이라" (꾸란 3:118)
만약 무슬림이 종교간의 연합을 요구한다면, 이 무슬림은 아주 명백한 이슬람 배교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요구는 이슬람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알라에 대한 불신을 용인하는 것이며, 꾸란의 진리에 대한 부정이자, ‘이전의 다른 모든 종교와 법을 폐기시키는 책’으로서 꾸란의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샤리아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러한 요구는 당연히 무시해야 하며, 이슬람의 여러 자료들- 꾸란, 순나 및 이즈마(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의 관점에서도 명백하게 금지해야 하는 행위입니다.
위에 근거하여:
알라를 주로 섬기고, 이슬람을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며, 무함마드를 알라의 선지자이자 메신저로 인정하는 무슬림이라면, 다른 무슬림들에게 이런 악한 생각을 전파하거나, 악한 행동을 부추길 수 없습니다. 그냥 혼자만 이러한 일에 참가하고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무슬림들은 구약이나 신약을 직접 인쇄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어떻게 꾸란과 성경책을 함께 인쇄할 수 있겠습니까? 꾸란과 성경을 함께 인쇄하는 사람이나, 또는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타락한 사람입니다. 왜냐면 한때는 진리(모세오경과 사복음서)였지만 이제는 폐기되고 왜곡된 성경과 진리인 꾸란을 결합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장소에 모스크와 교회, 유대 회당을 짓자는 요청도 무슬림들은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이슬람교 밖에서도 알라를 섬길 수 있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는 이슬람교가 모든 종교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에 위배되는 것이고, 세가지 중 어느 종교를 선택해도 무관하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이슬람이 이전의 모든 종교들을 폐기한다는 사상에 어긋나는 일종의 평등주의로, 이런 생각을 인정하거나 믿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불신자이며 잘못된 길로 들어간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상은 꾸란과 순나, 그리고 이즈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의 왜곡된 경전이 알라로부터 온 것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를 ‘알라의 성전’이라고 불러서는 안되며,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알라를 섬긴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의 예배는 이슬람의 예배와 완전히 다르며, 교회는 알라에 대한 불신앙을 표현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불신앙과 불신자들로부터 벗어나 알라의 보호를 받기를 기대합니다. 셰이크 알 이슬람 이븐 타이미야(알라여 자비를 베푸소서)는 마즈무 알파타와(Majmoo al-Fataawaa(22/162))에서 "교회와 유대회당은 알라의 집이 아니다. 알라의 집은 모스크뿐이다. 교회와 유대 회당은 알라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곳이며, 만약 그 안에서 알라를 말한다 할지라도, 집과 그 안의 사람은 같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불신자들이므로 그곳은 불신자들이 예배 드리는 집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무슬림들은 모든 불신자들, 특별히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게 꾸란과 순나에 나온 분명한 구절들을 이용하여 이슬람으로 전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할 때 좋은 말과 예의를 갖춰 이슬람을 설명하고 논쟁할 수는 있지만(꾸란 29:46), 절대로 이슬람의 교리와 규칙들을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이 이슬람을 확신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 그들에 대한 증거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분명한 설명을 받고도 신앙을 거부한 자들은 마지막 때 멸망 당할 것이며 이슬람교를 믿기로 한 사람들은 살게 될 것입니다.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여 우리와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의 말씀으로 오라 (그리하여)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어떤 존재도 알라의 파트너로 연관시키지 않으며 누구도 알라 외에 다른 존재를 주로 삼지 말라 만일 그들이 배반한다면 실로 우리는 알라의 유일성을 믿는 무슬림임을 지켜보라" (꾸란 3:64)
파트와 위원회는 위와 같이 선언문을 작성하였습니다. 모든 무슬림들과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라를 두려워하고, 알라가 항상 이슬람을 살피며 무슬림들이 잘못된 불신자의 길과 또 불신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빠지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Source 4.
Sheik Muhammed Salih Al-Munajiid
Question 5.
저는 이슬람의 교리에 대해 잘 아는 무슬림들로부터 이교도의 나라(미국)에서 살지 말라는 충고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저는 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온 아랍계 미국인이지만, 몇 개월 전부터 아랍국가로 이주해 와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입부족과 주택 문제 등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그리고 역이민을 생각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의료보장 시스템 때문 인데, 투병중인 제 아내가 미국에서는 무료로 훨씬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계속 아랍국가에서 살아야 할지 저로서는 잘 판단할 수가 없으니, 하디스와 꾸란에 나타난 바른 해답을 가능한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Answer 5.
무슬림이 이교도의 나라에 거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만약 알라가 이교도의 나라에서 무슬림 국가로 이주할 여건을 만들어 주었다면,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무슬림은 결코 우등한 것(무슬림 국가에 사는 것)보다 열등한 것(비무슬림 국가에서 사는 것)을 선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위원회도 다른 무슬림들과 똑같이 이교도의 나라에서 살지 말라는 충고를 전합니다. 하지만 무슬림 국가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위해 임시로 비무슬림 국가를 방문하는 경우는 예외로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알라를 위하여 자기의 것을 포기한다면, 알라가 더 좋은 것으로 보상하여 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고난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누구든지 알라를 두려워하고 알라에 대한 의무를 다한다면, 알라는 그를 어려움에서 구해줄 것이며,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답하여 줄 것입니다. 또한 수익을 기대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자산을 잘 보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무슬림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신앙입니다. 결코 이 세상의 덧없는 이득을 얻기 위해서 신앙을 걸고 모험을 해서는 안 됩니다.
셰이크 이븐 우타이민(그에게 알라의 자비가 임하기를)은 비무슬림 국가에 거주하는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파트와를 발표하였습니다:
비무슬림 국가에 산다는 것은 무슬림 신자의 종교적 헌신, 도덕, 행위와 예절을 지키는 일에 중대한 위협이 됩니다. 우리는 비무슬림 국가에 살던 많은 무슬림 신자들이 어떻게 변질되었으며, 그곳에 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행악자가 되었으며, 어떤 이들은 이슬람을 버리고 불신자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고, 이슬람교와 무슬림의 과거와 현재를 완전히 부인하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무슬림 신자들이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지 않도록 미연에 철저히 방지할 수 있는 규정과 조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슬림이 비무슬림 국가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먼저 확실하게 종교 헌신을 한 자로써, 충분한 지식과 믿음, 그리고 힘을 가지고 견고하게 신앙을 지키고, 배교나 잘못된 길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불신자에 대한 증오심과 적대감을 지켜서 절대로 불신자들을 사랑하거나 그들과 친분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이슬람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라는 꾸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알라와 마지막 심판 날을 믿는 자들(무슬림들)이 알라와 무함마드를 거역하는 자들과 -자신의 아버지이던 아들이던 또는 형제들이나 친척들이던 간에- 친구가 되는 것을 발견치 못하리라." (꾸란 58:22)
또한 꾸란은 계속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써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그들에게로 향하는 너희가 있다면 그는 그 무리의 일원이거늘 알라는 그런 불의한 자들을 인도하지 아니하시리라 마음에 병(위선)이 들어서 서둘러 친구관계를 맺으며 우리에게 재앙이 올까 두려워서 그리한다고 말하는 자들 또한 알라께서는 인도하시지 아니하시리라 알라는 결국 그분의 뜻에 따라 승리를 취하시고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꾸란 5:51~52)
사히(Al-Saheeh)에서 그 선지자는 "어떤 무리를 사랑하는 자는 그들 중 하나이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알라의 원수를 사랑하는 행위는 무슬림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원수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고, 그들을 따라가게 되거나, 최소한 원수를 비난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 무함마드(알라의 평화와 축복이 임하길)는 "어떤 무리를 사랑하는 자는 그들 중 하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비무슬림 국가에 살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종교예식을 어려움 없이 지키기 위해 자신의 종교 의식을 그 나라에서 공개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정기적인 기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함께 예배할 다른 무슬림들이 있을 경우 금요예배(Jum’ah, 무슬림들의 휴일인 금요일 오전에 하는 예배)와 단체 기도모임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카(Zakaah: 의무적인 자선)와 금식, 핫지(Haji: 성지순례), 기타 이슬람 예식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무슬림 국가에서 살지 말고 이주(Hijrah)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셰이크 이븐 우타이민(Shaykh Ibn ‘Uthaymeen)은 비무슬림 국가에서 살 수 있는 경우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중 네 번째 범주에, 사업이나 치료를 받기 위한 개인적인 목적이 있을 때 비무슬림 국가에 체류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필요할 때까지 체류가 가능합니다. 학자(알라의 자비가 임하길)들은 사업적인 목적으로 비무슬림 국가에 갈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으며, 사하바(예언자의 친구들: 알라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길)들도 실제로 그렇게 했던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셰이크는 파트와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교도의 종교의식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알라와 무함마드를 따르지 않는 법이 지배하는 이교도의 땅에서, 이교도들의 생활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점차 그 땅에 소속감을 느끼면서, 가족들은 종교적인 헌신과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 위험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무슬림의 땅에서 만큼이나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무슬림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Source 5.
Majmoo’ Fataawa al-Shaykh Ibn ‘Uthaymeen, 마즈무 파타와 알 셰이크 이븐 우타이민
Question 6.
이교도들 중에 무슬림을 사랑하고 있으며, 우리를 향해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nswer 6.
불신자들(Kuffar: 유대인, 기독교교인), 다신론자들(Mushrikeen: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도 포함), 위선자들이 신앙인(무슬림)에 대해 갖는 적대감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 도래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진리와 거짓 사이의 충돌 역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라를 믿는 날까지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알라는 꾸란에서 "저들은 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이 이슬람으로부터 돌아설 때까지 싸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구든지 이슬람을 떠나서 불신자로 죽는다면, 그 인생의 모든 행적은 잃어버린 바 되고, 영원히 지옥 불에 거하게 될 것이다"(꾸란 2:17)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이 이슬람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슬람교는 믿는 자들(무슬림들)을 정의로 다스리며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슬람에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키고 거짓된 논리로 진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결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슬람교는 계속될 것이며, 불신자들의 증오에도 불구하고 알라가 그 빛을 온전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불신앙의 길을 따르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음(이슬람)을 거절한 것처럼 너희도 거절하기를 원하며, 모두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거늘" (꾸란 4:89)
또 알라는 불신자들이 무슬림들에게 얼마나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믿음이 없는 자들이나 불신자들은 너희 주(알라)로부터 너희들 위에 복음(꾸란)이 계시된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알라께서는 그분의 뜻에 따라 선택하여 자비를 베푸시니 알라의 은총은 충만하심이라" (꾸란 2:105)
불신자들이 무슨 일을 하든, 그들의 적대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입으로는 우정을 말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이 너희보다 우위에 있을 때 그들은 너희와의 조약을 존중치 아니하였는데 어떻게 그들과 조약을 맺을 수 있느뇨 그들의 입으로는 너희를 기쁘게 하는 듯하나 마음으로는 거절하고 있도다 실로 그들 대다수는 사악함이라" (꾸란 9:8)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알라에 대한 성경 구절을 믿지 않고, 진리 속에 거짓을 섞은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외면한 채 이슬람에 대적하여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버리도록 조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불신자들-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나 다신론자들, 위선자들 -은 우리 무슬림들의 원수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불신자들에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알라는 꾸란 3: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들(무슬림들)은 불신자들(비무슬림들)을 신앙인들에 우선하여 친구로 택하지 아니하도다 그렇게 하는 자 있다면 알라께 대한 믿음이 조금도 없나니 항상 경계하여 그들로부터 너희 자신을 보호하는 길 밖엔 없노라 알라는 너희로 하여금 그분의 벌을 상기시켜 주시나니 결국엔 모두 알라께로 갈 것이기 때문이니라"
알라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친구로 삼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였으며, 누구든지 그들을 친구로 택하는 사람은 그 역시 불신자들 중의 하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서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너희 중에 그들을 친구로 삼는 자 있다면 그들 중 하나와 같나니 알라는 이 불의한 자들을 인도하지 아니하시리라" (꾸란 5:51)
모든 불신자들은 -성서의 백성들(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든지 다신론자든지 위선자든지 관계없이- 부활의 날에 모두 지옥에 있게 될 것입니다.
"실로 성서의 백성들 중에 진리(이슬람)를 거역한 자들과 불신자들은 불 지옥에 있게 되리니 그들은 가장 사악한 무리들이라" (꾸란 98:6) 불신자와 유대인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내세에 아무런 몫이 없기 때문입니다. 알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 "그대는 유대인들이 가장 탐욕스런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 또 그보다 더 탐욕스런 이들은 알라에게 파트너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임을 알게 될 것이라 이들은 사후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죽음을 싫어한다."
Source 6.
셰이크 무함마드 이븐 이브라힘 알 투와이즈리의 우술 알딘 알이슬라미에서 인용
Question 7.
추수감사절과 같은 비무슬림 휴일을 축하할 수 있습니까?
Answer 7.
크리스마스와 같이 불신자들의 종교적 휴일을 축하하는 것은 하람(haraam: 금기된 악행)입니다.
Question 8.
그리스도인 친구가 자기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기독교 새해(이슬람력이 아닌 그레고리안 달력에 의한 새해)같은 때 직접 만든 음식(쌀, 고기, 닭고기, 케익 등)을 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고, 새해 첫날에 "Happy New Year"라고 서양식으로 인사하지 말고, 이슬람 식으로 "인샬라(Insha Allaah, 알라의 뜻이라면) 올해도 잘 지낼거야"라고 인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nswer 8.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 자기들의 축제에 만든 음식을 먹거나 선물을 줄 때에 받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불신자들의 악행에 협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의 축제를 축하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의 축제를 축하한다는 것은 결국 그 축제를 인정하고, 불신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불신자들이 종교적 상징과 발전된 모습을 보일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신자들의 축제에서 함께 즐거워한다면, 이것은 이슬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잘못된 신앙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Source 8.
Question 9.
이슬람에 대해 몇가지 질문이 있는데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슬람에서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모든 비무슬림들은 알라와 이슬람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하나요? 이슬람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결코 낙원에 들어갈 수 없습니까?
Answer 9.
이슬람이 아닌 모든 종교는 조작되었거나, 잘못된 것이며 이미 폐기된 것입니다. 조작되고 잘못된 종교로는 고대 아라비아 사람들이 우상이나 돌 같은 것을 섬겼던 예가 있습니다.
폐기된 종교는 최후의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오기 전에 이전 선지자들이 가르쳤던 종교들을 말합니다. 폐기된 종교들 역시 알라가 만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제 이슬람이 나타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신과 천사, 천국과 지옥의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진리는 이슬람교와 기존의 종교들 사이에 차이가 없으며, 이러한 것은 이전의 선지자들도 모두 가르친 것입니다. 무함마드는 기도와 금식, 성지순례, 자선 등을 통해 알라를 더 잘 섬기고 알라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이것은 기존의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나중에 선지자들을 따르던 이들이 점차 잘못된 길로 들어서 신성을 모독했으나, 이슬람교가 도래하여 사람들에게 이전의 선지자들이 가르쳐 주었던 바른 믿음을 깨우쳐 준 것입니다.
이 증거는 꾸란 3:8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알라는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그는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
이슬람에서는 이 사람들을(타종교 신자)들을 단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kaafir), 즉 위의 꾸란에서 말한 것처럼 영원히 지옥 불에서 살게 될 불신자라고 합니다.
불신자(kaafir)는 지옥에 가게 될 멸망자들이며, 결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불신자가 무슬림이 되기 전까지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Source 9.
Question 10.
배교의 행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Answer 10.
알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슬람을 믿고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이슬람에 반대되는 것은 무엇이든 경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한 선지자 무함마드(그에게 알라의 평화와 축복이 임하길)를 보내어 인류에게 이슬람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무함마드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은 바른 길로 인도받지만, 자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길을 잃게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꾸란 여러 곳에 배교, 우상숭배, 그리고 불신앙으로 이끄는 나쁜 행동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알라의 자비가 임하길)이 배교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을 보면, 만약 무슬림이 이슬람교를 무시하는 악행을 행하고 배교한다면, 그를 죽이고, 재산을 몰수할 수 있으며, 출교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장 심각하고 또한 일반적인 배교 행위 가운데 셰이크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과 다른 학자들(알라의 자비가 이들에게 있기를)이 설명한 열 가지를 간단히 보려고 합니다. 이것을 읽고 잘 숙지하신 분들은 안전할 것입니다. 각각 간단한 설명과 함께 열 가지의 배교행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다신론(Shirk) 또는 다른 존재를 알라와 연관시켜 예배하는 행위는 배교의 행위입니다. "실로 알라는 다른 존재를 알라의 파트너로 세우는 것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그 외에는 원하는 자마다 용서를 하시나니, 다른 존재를 알라의 파트너로 세워 예배하는 자는 멀리서 방황하는 자니라" (꾸란 4:116)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자신과 알라 사이에 중재자를 두고, 중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중재자를 신뢰하는 사람은 배교자입니다.
다신론자들을 불신자로 여기지 않거나,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실을 의심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길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역시 배교자입니다.
선지자 무함마드(알라의 평화와 축복이 그에게 있기를)의 가르침이나 규범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가르친 규범이 아닌 잘못된 규범을 옹호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사람은 배교자입니다.
선지자 무함마드(알라의 평화와 축복이 그에게 있기를)의 가르침을 따르기는 하지만, 그 중 일부분이라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신자입니다. 왜냐하면 알라가 "그들이 알라가 계시한 것을 혐오하였기 때문에 알라는 그들의 행위를 무익하게 했다"(꾸란 47:9)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교의 어떤 부분이나, 보상이나 처벌에 관련된 어떤 구절에 대해서도 농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신자입니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알라와 그분의 말씀과 선지자를 너희가 조롱하고 있었느뇨 변명치 말라 너희는 믿음을 표시한 후 불신하였으매…"(꾸란 9:65~66)
시흐르(Sihr,마술)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거나 서로 사랑하게 만드는 주문- 도 이에 포함됩니다. 이 같은 행위를 직접 하거나 또는 용인하는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두 천사들은 ‘우리는 단지 시험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마술을 배움으로써 알라를 따르는 길에서 불신자가 되지 말라’고 말할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을 가르치지 아니하였다"(꾸란 2:102)
무슬림 대신 다신론자를 지원하거나 돕는 행위는 배교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꾸란 5장에 있는 알라의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서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그들에게로 향하는 너희가 있다면 그는 그 무리의 일원이거늘 알라는 이 불의한 백성들을 인도하지 아니하시리라" (꾸란 5:51)
알 키드르가 모세(그에게 평화를)의 율법 밖에서 행동했던 것처럼 무함마드(알라의 평화와 축복이 임하기를)가 준 율법 밖에서 행동해도 무방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신자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알라는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내세에서 그는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 (꾸란 3:85)
알라의 종교를 떠나서 이슬람교를 배우지 않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도 불신자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꾸란 32장에 나와 있습니다: "알라의 말씀을 기억한 후 그 말씀을 배반한 자보다 더 사악함이 어디 있느뇨 실로 알라는 죄인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라" (꾸란 32:22)
이 모든 행동들은 이슬람을 무시하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가 장난이든지, 진심이든지, 또는 두려워서 한 말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배교의 행위들에 해당합니다. 다만 강압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행했다면 이 경우만은 예외입니다. 이런 배교의 행위들은 심각한 잘못이며, 그리고 사실 자주 발생하는 일들입니다. 무슬림들은 불신자들을 대할 때 경계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알라의 분노와 무서운 형벌이 뒤따르는 행위를 버리고 알라 안에서 평안을 찾기를 바랍니다. 알라가 최고 피조물인 무함마드와 그의 가족, 동료에게 축복과 평화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배교의 또 한가지 유형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과 법률이 이슬람의 샤리아보다 더 우월하거나 최소한 동등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또는 샤리아가 더 좋다고 믿으면서도 판정을 위해 인간의 법률을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의 시스템이 현재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그것을 고집하는 무슬림은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샤리아가 인간과 신 사이의 신앙 문제에만 관여하고 다른 문제는 샤리아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또한 알라의 명령에 따라 도둑의 손목을 자르고 간음을 행한 사람을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법이 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배교에 포함됩니다. 샤리아가 더 낫다고 믿지만, 상호관계나 후두드 형벌, 그 외 다른 문제들을 처리할 때 알라의 법이 아닌 다른 규칙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결국 알라가 금지한 것을 그가 허용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배교에 해당합니다. 알라가 금지한 것을 허용하는 행위는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일로서, 간음, 음주, 이자, 샤리아가 아닌 다른 법에 의한 판정 등이 금기사항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행위는 모두 배교의 행위라고 모든 무슬림들이 합의하였습니다.
Source 10.
부록 C: 우리와 당신들 사이의 공통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