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을 전도하다 (The Cart Before the Horse)
-이슬람 테러리즘과 폭력에 관하여-
바쿠바 ••• 아부 가립 ••• 타크리트 ••• 알카에다 ••• 빈트 주바일 ••• 팔루자 •••하미디 •••사마라 •••하미드 알 수아이디 ••• 알 자르카위 ••• 빈 라덴 ••• 아흐마디네자드!
뉴욕의 9/11 테러 이후 몇 년 내에 뉴스기자들은 위와 같은 낯선 지명이나 인명의 발음에 익숙해졌다. 이 단어들 중 일부는 마치 모국어처럼 부드럽게 기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상용어가 되었다.
이것은 전부 우리가 ‘새로운 기준’(new normal)이라고 부르는 것의 단면이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과 새로운 어휘-즉, 테러의 어휘-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어휘들과 더불어 관련 국가들의 지리까지 익숙해지게 되었는데, 전에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땅들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통달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왜, 언제, 그리고 과연 끝나기는 끝날 것인가? 에 대해서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하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될까? 이것이 과연 영속적인 평화의 기반이 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추측은 백악관의 전문가의 생각에서부터 길거리 행인들의 말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우리는 처음에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들었다. 그러나 5년 후 그 주장은 도전을 받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은 당면한 상황을 더 현실적으로 다루기 위해 이슬람 파시즘 (Islamic Fasc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다큐멘터리, 토론회, 컨퍼런스들이 지금 도데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무슬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슬람과 테러리즘의 관계에 대하여 무슬림들(온건한 무슬림들 포함)과 대화를 시도하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수레를 말 앞에 다는 것’처럼 본말을 전도하여 아무 관계없는 사건들과 그런 불의를 연관 지어 테러에 대한 정당화로 대화를 끝내기 일쑤다. 그들은 테러가 불의를 시정하기 위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라!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체첸, 이라크, 팔레스타인, 그리고 지금 레바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잔인한 사건들을 보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그의 동맹군들이 저지르고 있는 사악하고 잔인한 행동들을 보라! 아부 그라입 감옥에서의 잔학한 행위를 보라!
또 십자군 전쟁은 어떤가! 유럽인들이 우리에게 쳐들어와 200년 이상 대량학살과 잔인한 전투를 일으키지 않았는가?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일을 기억하라. 그런 일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아랍권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의한 사건들을 보라!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강탈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국제적 결정을 무시하고 2차 대전 후 팔레스타인을 빼앗아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그 땅의 여자와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어 전 세계로 흩어지게 하거나 난민촌 신세가 되게 했다.
그리고 이슬람 성지와 유적지를 더럽히는 행동을 일삼고 있지 않는가?
알다시피 이런 모든 정의롭지 못한 행동들이 이슬람의 폭력적인 반응, 보복, 그리고 테러리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이슬람이 테러리즘으로 인해 잘못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묻고 싶다. “자기 방어가 죄란 말인가? 아랍인과 이슬람의 피는 값싼 피인가?”
그러나 그들은 과거 이슬람의 역사와 이슬람의 근본이 되는 꾸란 및 경전들 속에 나오는 테러리즘의 뿌리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다. 이 뿌리는 이슬람의 정복 역사 내내 쓴 열매를 맺어왔으며, 오늘날 이스라엘이 없고 무슬림 땅에 미군이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의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AD 635년 소위 “정의롭고” “바르게 인도받았다고 하는” 칼리파 우마르 이븐 알 카탑(Khalifa Umar Ibn Al Khattab)이 아라비아 반도로부터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강제 추방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복 때문이었는가?
7세기부터 17세기까지 근처 나라들로 계속 이어진 이슬람 군대의 정복 행진은 결국 비엔나 문 앞까지 이어졌는데 이것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 때문이었는가? 그 때 이스라엘이 어디 있었으며 미국은 또 어디에 있었는가?
왜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은 테러리즘의 ‘원인’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 자신들의 역사와 경전의 내용들을 간과하는가? 특히 꾸란에 ‘성전(Holy Jihad)"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왜 주의하지 않는가?
솔직히 이슬람의 테러리즘과 폭력은 관련국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불의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선의의 서양 사람들, “온건한” 무슬림 정치 고문들, 그리고 일부 정책 연구소 전문가들은 그렇게 주장하며 이 인식을 사람들 안에 계속 심어주고 있다.
존경하는 권위자들이여,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슬람 내의 테러리즘과 폭력은 정치적인 불의 때문도 아니고 경제적인 불의 때문도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실 가슴 아픈 진실은 테러리즘과 폭력이 이슬람의 근본 요소라는 것이다. 피 흘림이나 잔인함이 없는 이슬람은 이슬람이 아니다. 피 흘림이 없는 이슬람은 시들어 버리거나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불의’가 테러의 실제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매우 실제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이러한 불의는 테러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알라를 위한 지하드 요원들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조종하고, 배출하는 일에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알카에다나 다른 테러 단체 리더들은 이런 실제적인 ‘불의’와 또 실은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는 “불의”를 둘 다 이용해서 무슬림 젊은이들의 사상을 꾸란이 말하는 참된 이슬람으로 돌아가도록 세뇌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살 폭탄 테러 순교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이 꾸란으로 돌아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이슬람의 ‘투쟁’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로’ 결심할 때 그들은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일까? 그들은 이슬람의 관점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증오하고 그들을 죽이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극히 정상적인 일이며, 실제로 알라가 모든 무슬림들에게 준 신성한 명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하드를 수행하다가 순교하면 바로 천국에 간다는 꾸란의 약속은 그들의 새로운 결심을 더 강화시켜준다. 이것이 자살 폭탄 테러범들에게 사용하는 공식이다.
이러한 신적이고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령은 (아래 꾸란 구절 참조) 약 1400년 간 꾸란 속에 존재해오면서 수세기 전 이슬람이 처음 출현했을 당시 지하드요원들에게 힘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알카에다나 그와 비슷한 지하드 단체들이 이슬람의 세계적인 부활을 꿈꾸며 활동할 때 그들을 안내하고, 가르치고, 단결시키고, 힘을 주는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꾸란 9:29 “경전이 주어졌건만 알라와 마지막 날(심판의 날)을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선지자가 금기시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이슬람교)를 따르지 않는 자들(즉,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이슬람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이슬람에) 복종하는 의미로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싸워 죽이라”
꾸란 5:82 “믿는 자들에게 가장 심한 적의를 품는 이들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꾸란 5:51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을 친구나 보호자로서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 친구들이라 너희 중에 그들을 친구로 삼는 자 있다면 그들 중 하나와 같다 참으로 알라는 불의한 백성들(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인도하시지 않는다” (꾸란 5:51)
꾸란 60:1 “오, 믿는 자들(무슬림들)이여! 나의 원수들과 너희의 원수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구로 삼지 말라”
꾸란 98:6 “성서의 백성들(즉 유대인과 기독교인들)과 다신교도들(모든 다른 종교인들) 가운데 이슬람을 거절한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 불에 거하게 되리니 그들은 피조물들 중에 가장 사악한 무리들이라”
처음부터 항상 이런 태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무함마드의 활동 초반과 중반 무렵 그가 받았던 꾸란의 계시를 보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호의적인 구절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호의적인 계시들은 그가 죽기 훨씬 이전에 이미 무효화되고 폐기되었으며, 위에 인용된 것과 같은 나중 계시들이 실효성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만일 무슬림들이 위에 기록된 꾸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슬람의 ‘의무’로써 유대인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유대인들이 그들을 신뢰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꾸란의 명령들에 비추어볼 때 아직도 유대인에 대한 이슬람의 적대감과 증오가 단지 팔레스타인 점령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명백하게 그들 종교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가?
이 글 앞 부분에 나온 대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의가 문제라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라크에서 그리고 모든 무슬림 영토에서 다국적 군대가 철수하기만 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해결되고, 이라크는 안정되며, 또 꾸란의 “지하드 의무”는 폐지된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위에 인용된 꾸란 5;51-52은 “ 오 믿는 자들이여! 가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너희 친구로 삼으라” 그리고 꾸란 5:82은 “무슬림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유대인이다” 라고 그 내용이 바뀌기라도 할 것인가?
다시 말해 불의가 시정되면 이슬람의 지하드도 멈추고 우리는 정말 이상적인 환경 아래 ‘영속적인 평화’를 진정으로 누리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이슬람에 복종하고 굴복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슬람 지하드가 끝나게 되는 것인가?
샘 솔로몬